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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학

신약성서와 로마 제국: 정치적 배경 속 복음

1. 로마 제국의 지배 아래 형성된 신약 성서 – 역사적 배경과 정치 체제

신약성서는 단지 종교 문서가 아니라, 1세기 로마 제국이라는 거대한 정치·사회적 질서 속에서 쓰인 역사적 산물이다.
예수의 탄생부터 바울의 선교 여정, 요한계시록의 환상까지 모든 기록은 로마 제국의 통치 체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예수께서 태어날 당시 팔레스타인은 로마의 속주로, 헤롯 왕가는 로마의 후원 아래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고,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의 정치적 안정과 로마법의 집행을 감시하는 핵심 인물이었다.

로마 제국은 철저히 중앙집권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으며,
식민지 지역마다 현지 통치자, 세리, 군대, 종교 지도자들과의 복합적인 권력 구조를 형성했다.
이러한 체제 속에서 백성들은 무거운 세금과 정치적 억압, 사회적 불안에 시달렸다.
동시에 로마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라는 이름 아래 제국 전역에 평화와 질서를 강요했지만,
그 평화는 폭력과 무력에 기반한 위장된 안정에 지나지 않았다.

이처럼 신약성경의 배경은 정치적으로 긴장감이 높고, 종교와 권력이 얽힌 복합적인 시대적 상황이었다.
복음이 선포되는 현장은 단순한 영적 공간이 아니라,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적 무대 위에서 진행된 역사적 사건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이해해야 한다.

 

신약성서와 로마 제국: 정치적 배경 속 복음

2. 예수의 메시지와 로마 체제의 충돌 – 복음은 정치적 선언이었다

예수의 복음은 단지 개인의 영혼 구원만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분이 선포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선언은 당대 로마 제국의 이데올로기,
즉 "카이사르(황제)가 주다"는 고백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급진적 정치적 선언이었다.
신약의 복음은 철저히 **"예수는 주(主)"**라는 고백을 중심으로 하며,
이는 곧 “카이사르가 주가 아니다”는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의 정치적 메시아 기대와 달리 로마의 폭력에 무력으로 대응하지 않으셨지만,
그분의 존재와 메시지는 이미 로마의 권위를 넘어서는 새로운 통치를 선포하고 있었다.
예수께서 공생애 동안 반복해서 언급한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와 억눌린 자, 박해받는 자의 해방을 포함한 종말론적 통치를 의미했으며,
이는 제국이 약속하지 못한 진정한 정의와 평화를 담고 있었다.

로마 제국은 질서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십자가형이라는 공포의 정치 수단을 사용했고,
예수는 바로 그 십자가에서 제국의 폭력성과 종교 권위의 타락을 동시에 고발하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은 단순한 구속 사건을 넘어,
로마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으로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신적 반전이었다.

복음은 단지 내면의 변화만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 체제, 정의에 대한 재정의 와 재질서를 요청하는 정치적 선언문이기도 했다.

 

3. 초대교회의 탄생과 로마 제국 – 복음 공동체의 사회적 저항성

예수의 죽음 이후,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이라는 체제 안에서 독립적인 공동체로 성장해 갔다.
이 공동체는 경제적으로는 가난했고, 정치적으로는 힘이 없었지만,
영적으로는 강력한 정체성과 저항의 힘을 지닌 조직체였다.
사도행전과 바울 서신은 로마의 제도와 충돌하거나 긴장을 형성하는 사례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로마의 도시들을 돌며 복음을 전했지만,
동시에 그는 "예수는 주이시다"는 고백을 통해 황제 숭배를 암묵적으로 거부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바울조차도 로마 제도의 모순을 경험했고, 결국 그 체제 아래에서 순교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 예배의 공간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가치관에 대항하는 신앙적, 윤리적, 정치적 공동체로 작용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카이사르에게 절하지 않고, 우상 숭배를 거부했으며,
사회 질서의 중심이었던 가정 구조나 노예 제도, 계층 문화에 대해서도 복음의 가치로 새롭게 접근했다.
이로 인해 교회는 단지 신앙의 공동체가 아닌, 제국 체제에 균열을 가하는 신적 도전의 실현체로 자리 잡게 되었다.

결국, 초대교회의 생존과 확장은 단지 성령의 은혜뿐 아니라,
당대 권력 구조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저항과 공동체적 실천의 결과였다는 점에서,
그들의 신앙은 매우 사회적이며 정치적인 의미를 가졌다.

 

4. 오늘날 복음의 공공성 – 제국을 넘는 하나님 나라의 비전

신약성경이 로마 제국이라는 정치적 배경 속에서 쓰였다는 사실은,
복음이 단지 개인의 내면적 회심에만 머무르지 않고, 공공 영역에서 ‘체제에 대한 신학적 대안’을 제시하는 선언이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현대적 ‘제국’, 즉 자본 중심의 세계 질서, 대형 플랫폼 기업의 독점, 미디어 권력, 정치적 불의 등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구조는 외형적으로는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수많은 이들을 **소외시키고, 경쟁으로 몰아붙이며, 약자를 침묵하게 만드는 현대판 ‘팍스 로마나’**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러한 제국적 질서에 새로운 정치, 새로운 정의, 새로운 연대를 제안하는 거룩한 반역의 언어였다.
“가장 작은 자가 크고, 섬기는 자가 으뜸이 된다”(마 20:26–28)는 가르침은
오늘날의 성공 중심적 가치관, 위계적 권력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자, 하나님 나라 질서의 예고편이다.

현대 교회가 이 복음을 다시 살아낸다는 것은
단지 예배를 ‘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억눌린 자의 목소리를 듣고, 차별과 불의를 거절하며, 대안적 공동체를 실제로 세워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이 로마의 십자가 앞에서 침묵하지 않으셨듯,
오늘날의 교회도 사회적 불의 앞에서 복음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울고 연대하며 하나님의 정의를 삶으로 구현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지금도 여전히 “예수는 주이시다”라는 고백을 붙들고 살아야 한다.
이 고백은 단순한 교리적 진술이 아니라,
‘카이사르’가 아닌 예수를 우리의 삶의 중심 권위로 삼는다는 정치적·윤리적 선언이다.
이 고백은 개인의 영성에 머물지 않고,
경제적 결정, 소비 행태, 관계 방식, 사회 참여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복음의 공공성이란, 교회가 단지 교회 안의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전체를 향해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증거 하는 책임을 지는 것이다.
기독교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이제 더 이상 시민권을 제국에 두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둔 존재이며,
그로 인해 우리는 세상 속에서 더 깊은 책임과 더 분명한 선택을 요구받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초대교회가 로마 제국의 도심 한복판에서
노예와 자유인, 여성과 남성, 유대인과 이방인을 함께 예배하게 만들었던 구조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사회적 기적’**이었다.
오늘날에도 교회가 이 복음을 현실로 살아낸다면,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윤리를 새로운 제국 속에서 구현하는 대안 공동체가 될 수 있다.

결국 복음은 단지 개인의 죄를 사하고 천국에 가게 하는 ‘사적인 구원’의 언어가 아니라,
세상을 다시 창조하고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공적이고 사회적인 선언’**이다.
그리고 이 선언은 오늘도
자본, 권력, 시스템이 절대적이라 말하는 제국에 맞서
다른 방식의 정의, 사랑, 평화가 가능하다는 증언으로 울려 퍼져야 한다.